내 인생은 아직도 공사중.. 바람부는 날 은백양나무 숲으로 가면 청명한 날에도 소낙비 쏟아지는 소리 귀를 막아도 들립니다 저무는 서쪽 하늘 걸음마다 주름살이 깊어가는 지천명(知天命) 내 인생은 아직도 공사중입니다 보행에 불편을 드리지는 않았는지요 오래 전부터 그대에게 엽서를 씁니다 그러나 주소를 몰라 보낼 수 없.. 시인과 시 2010.07.15
강-황인숙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 시인과 시 2010.03.31
물에게 길을 묻다 물에게 길을 묻다 /천양희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고 누가 말했었지요 그래서 나는 물 속에서 살기로 했지요 날마다 물 속에서 물만 먹고 살았지요 물 먹고 사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요 물보라는 길게 물을 뿜어 올리고 물결은 출렁대며 소용돌이 쳤지요 누가 돌을 던지기라도 하면 파문은 나에게까.. 시인과 시 2009.04.22
물에게 길을 묻다 3 물에게 길을 묻다 /천양희 가장 큰 즐거움은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라고 누가 말했었지요 그래서 나는 사람으로 살기로 했지요 날마다 살기 위해 일만 하고 살았지요 일만 하고 사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요 일터는 오래 바람 잘 날 없고 인파는 술렁이며 소용돌이쳤지요 누가 목소리를 높이기라도 하면 .. 시인과 시 2009.04.22
그 사람에게 그 사람에게 /신동엽 아름다운 하늘 밑 너도야 왔다 가는구나 쓸쓸한 세상 세월 너도야 왔다 가는구나. 다시는 못 만날지라도 먼 훗날 무덤 속 누워 추억하자, 호젓한 산골길서 마주친 그날, 우리 왜 인사도 없이 지나쳤던가, 하고. 시인과 시 2009.04.15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 이기철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 이기철 벚꽃 그늘 아래 잠시 생애를 벗어 놓아보렴 입던 옷 신던 신발 벗어놓고 누구의 아비 누구의 남편도 벗어놓고 햇살처럼 쨍쨍한 맨몸으로 앉아보렴 직업도 이름도 벗어놓고 본족도 주소도 벗어놓고 구름처럼 하이얗게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그러면 늘 무겁고 불편한 오.. 시인과 시 2009.03.29
비 내리는 오후 세시 그리움이란 마음 한 켠이 새고 있다는 것이니... 빗 속에 누군가 그립다면 마음 한 둑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니... 비가 내린다 그대, 부디 조심하기를... 심하게 젖으면, 젖어들면, 허물어지는 법이니... 비가 내리는 오후 세 시 마침내 무너진 당신, 견인되고 있는 당신 . . 비 내리는 오후 세시 - 박제영 시인과 시 2008.07.02
항문의 끝 항문의 끝 -권혁진 입에서 항문까지는 참으로 멉니다. 나의 평생은 이 긴 터널을 빠져나가는 일입니다. 한 올의 광명도 없는 좁은 터널을 고통스럽게 지나가는 일입니다. 끝내는 명부로 이어지는 이 길은 깊을수록 숨막힙니다. 침에 젖고 피가 묻어 나는 천하게 하강합니다. 구불텅구불텅 만신창이로 .. 시인과 시 2008.05.23
존재에 대하여 존재에 대하여 / 박승우 누구나 슬픔의 악보 하나쯤 갖고 살아간다. 누구나 외로움의 색깔 하나쯤 갖고 살아간다. 강한 척 살아가는 그들도 건드리면 슬픔의 건반이 울려버릴 것 같은 건드리면 외로움의 물감이 번져버릴 것 같은 기나긴 여정을 달려 온 새벽강이다. 눈물을 흘리지 않고도 우는 것을 배.. 시인과 시 2008.04.15
오늘밤 나는 쓸 수 있다 오늘밤 나는 쓸 수 있다... - 파블로 네루다 오늘밤 나는 쓸 수 있다 제일 슬픈 귀절을. 예컨대 이렇게 쓴다. "밤은 산산히 부서지고 푸른 별들은 멀리서 떨고 있다" 밤바람은 공중에서 선회하며 노래한다. 오늘밤 나는 제일 슬픈 귀절을 쓸 수 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고, 때때로 그녀도 나를 사랑했다. .. 시인과 시 2007.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