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심야 쇼핑 유감-부산일보

사과나무 아래서 2009. 7. 14.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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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심야 쇼핑 유감

 

시간도 잊은 채 분주하게 물건을 고르고, 카트에 물건을 담는 심야 쇼핑객들은 대형마트가 주는 편리함 때문에 그 뒤에 가려진 '불편한 그늘'을 보지 못한다. 부산일보 DB

 

가로등마저 잦아든 인적 드문 거리를 지난다. 가도 끝에 살풍경하게 자리한 거대 콘크리트 구조물을 향해서이다. 자동문을 통해 내부로 진입하면 엄청날 정도로 많은 물건들이 진열된 선반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놀랍다! 선반들 사이로 많은 사람들이 시간도 잊은 채 마치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자동 로봇처럼 분주하게 바장이며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다.

그곳에서 우리는 수박을 사고, 전자제품을 구경하고, 허기를 달래 줄 밤참을 먹는다. 그리고 파리한 낯빛으로 서 있는 카운터의 계산원들에게 '심야 쇼핑'의 대가를 기꺼이 지불한다. 계산원들의 가족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들은 하루에 몇 번이나 교대할까? 통풍도 안 되는 공간에서 이들은 어떻게 건강을 유지할까? 우리에게는 이런 질문이 좀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유통 혁명'의 편리함이 너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시장의 논리'가 최신의 만병통치약으로 제시되면서, 이런 질문 자체를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시장은 인간에게 요긴한 것을 효율적으로 제공하는 최선의 메커니즘이라고 한다. 따라서 시장의 흐름에 가급적 간섭하지 않는 것이 최대 다수의 인간에게 최대의 행복을 보장하는 길이라고도 한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시장의 흐름에 부응하지 못하는 일부,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면 '경쟁력이 떨어지는' 소수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들은 더 많은 생산, 더 효율적인 유통, 더 큰 만족을 위하여 우리가 감당해야 할 최소한의 희생양이기 때문이다.

지난 이삼십 년 동안 이런 식의 논리가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득세하면서 우리는 어느 결에 승자독식의 '시장민주주의'의 포로가 되었다. 경쟁에서 패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물론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승자가 되고 싶은 나머지 자신의 처지와 상관없이 승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자신이 편리함을 추구하는 소비자인 동시에, 자본에 고용되어 생계를 해결하는 생산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쉽게 잊곤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하철이 파업하는 것이, 실직한 사람들의 시위로 길이 막히는 것이, 동네 서점이 저녁에 문을 닫는 것이 짜증스럽다. 마트 계산원의 옹색한 살림살이는, 주변 재래시장의 초토화는, 혹은 동일한 노동을 하면서도 형편없는 보수를 받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우리의 고려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것들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금의 경제 위기는 일상적인 안온함에 젖은 나와 같은 자의 정수리를 후려친다. 시장은 인간의 욕구 충족이 아니라 오로지 이윤을 추구하는 괴물임을 그것은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인간의 욕구와는 무관하게 돈이 되는 것이라면 너도 나도 달려드는 속성 때문에, 자본주의는 주기적으로 과잉생산을 낳는다. 지구상의 빈민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 줄 수도 있을 많은 물자들이 엉뚱한 곳에 투입되어 쓸모없는 폐품 덩어리로 녹슬어가는 일이 거의 규칙적으로 반복된다. 그 과정에서 다수의 인간들은 일자리를 잃고, 결국 더욱 열악한 노동조건마저 흔쾌히 감수하는 일꾼으로 거듭나게 된다. 한동안 애써 외면해 왔던, 그러나 어김없이 재림하는 이 '진실'. 우리는 지금 그것과 대면하고 있다. 

 

이현석 경성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필자 약력=서울대 영문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한국일보 신춘문예 희곡부문 당선 이후 극작 활동. 월간 '객석' 제정 예술평론상 연극 부문 수상 이후 연극평론 활동. 가담학술상 저술부문 수상. 만청학술상 수상. 저서 '작가생산의 사회사', 테리 이글턴 '우리시대의 비극론'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