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수
1.<아침 이미지>
어둠은 새를 낳고, 돌을
낳고, 꽃을 낳는다.
아침이면,
어둠은 온갖 물상(物象)을 돌려 주지만
스스로는 땅 위에 굴복(屈服)한다.
무거운 어깨를 털고
물상들은 몸을 움직이어
노동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즐거운 지상(地上)의 잔치에
금(金)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울림.
아침이면,
세상은 개벽(開闢)을 한다.
2.<마을>
외로운 마을이
나른나른 오수(午睡)에 조을고
넓은 마을에
솔개미 바람개비처럼 도는 날……
뜰안 암탉이
제 그림자 쫓고
눈알 대록대록 겁을 삼킨다.
3.<새>
1
하늘에 깔아 논
바람의 여울터에서나
속삭이듯 서걱이는
나무의 그늘에서나, 새는 노래한다.
그것이 노래인 줄도 모르면서
새는 그것이 사랑인 줄도 모르면서
두 놈이 부리를
서로의 죽지에 파묻고
따스한 체온(體溫)을 나누어 가진다.
2
새는 울어
뜻을 만들지 않고,
지어서 교태로
사랑을 가식(假飾)하지 않는다.
3
- 포수는 한 덩이 납으로
그 순수(純粹)를 겨냥하지만
매양 쏘는 것은
피에 젖은 한 마리 상(傷)한 새에 지나지 않는다
박남수(朴南秀,1918~ 1994)
평남 평양 출생.
일본 중앙대학 졸업. <삶의 오료(悟了)>를 <중앙일보>에
1932년에 발표하여 일찍부터 창작을 시작하였다.
1939년에 <문장>지에 <초롱불>,<밤길> 등이 추천되었다.
그의 시세계는 여러 차례의 변모를 거치는 데, 초기에는
주로 자연의 서정과 서경을 읊고 있는데, 매우 조심스럽고
섬세한 손길을 느끼게 하는 것이엇다.
후기에는 차츰 지적(知的)인 측면과 존재론적 탐구를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주지적 계통의 시를 창작했다.
시집으로는 <초롱불>(1940),<갈매기 소묘>(1958),<신의 쓰레기>(1964),
<새의 암장>(1970),<사슴의 관>(1981)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