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시
김수영
사과나무 아래서
2007. 4. 14. 08:06
<풀>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 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金洙暎,1921~1968).
서울 출생. 연희 전문 영문과 중퇴.
1945년 <예술부락>에 <묘정의 노래>를 발표하면서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박인환 등과 함께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간행하고
해방 후 모더니즘 운동을 주도했다. 초기에는 모더니스트로 출발했으나,
4.19의거 이후에는 현실성.산문성을 중시하여 강렬한 현실 의식과 저항
정신에 기반한 참여시로 나아갔다.
시집으로는 <달나라의 장난>(1945),<거대한 뿌리>(1974)가 있고,
산문집으로는 <시여 침을 뱉어라>(1975)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