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시

이육사

사과나무 아래서 2007. 4. 14. 08:25

 

 

-노정기(路程記)-

목숨이란 마치 깨어진 뱃조각
여기저기 흩어져 마음이 구죽죽한 어촌(漁村)보담 어설프고
삶의 티끌만 오래 묵은 포범(布帆)처럼 달아매었다

남들은 기뻤다는 젊은 날이었건만
밤마다 내 꿈은 서해(西海)를 밀항(密航)하는 쩡크와 같아
소금에 절고 조수(潮水)에 부풀어 올랐다

항상 흐릿한 밤 암초(暗礁)를 벗어나면 태풍(颱風)과 싸워가고
전설(傳說)에 읽어 본 산호도(珊瑚島)는 구경도 못하는
그곳은 남십자성(南十字星)이 비쳐주도 않았다

쫓기는 마음 지친 몸이길래
그리운 지평선(地平線)을 한숨에 기오르면
시궁치는 열대식물(熱帶植物)처럼 발목을 오여 쌌다

새벽 밀물에 밀려온 거미이냐
다 삭아빠진 소라 껍질에 나는 붙어 왔다
머-ㄴ 항구(港口)의 노정(路程)에 흘러간 생활(生活)을 들여다보며

 

 

 

이육사(李陸史,1904~1944).

 

 

본명은 원록. 경북 안동출생.
중국 북경대학 사회과를 졸업했다. 육사는 아호(兒號)이자
형무소 복역시 수인 번호인 64호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제에 저항하다가 10여차례의 구금투옥을 겪기도 했다.
윤동주와 더불어 일제말 저항시인의 본보기가 되고 있는 시인이다.
시 <황혼>을 <신조선>에 발표하면서 그는 문단에 데뷔하였고,
1937년 <자오선>의 동인으로 활동했다.
시집으로는 <육사시집>(1946)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