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작품

치유·위로의 글쓰기로 한평생…'영원한 현역'

사과나무 아래서 2011. 1. 24. 14:12

 

타계한 소설가 박완서 삶과 문학

 

<부산일보> 

22일 80세를 일기로 타계한 소설가 박완서는 '영원한 현역'이었다. 1970년 불혹의 나이로 늦깎이 등단을 한 그는 40년간 끊임없이 치유와 위로의 글쓰기를 계속해 왔다. 

그는 한평생 소설을 쓰며 자신의 상처와 세상의 아픔을 보듬어온 한국 문학의 거목이었다. 정부는 24일 고 박완서 작가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기로 했다. 

불혹의 나이로 늦깎이 등단
문학성과 상업성 모두 성취

정부, 금관문화훈장 추서 
 
·전쟁의 상처를 문학적으로 승화
 
문단 데뷔 40주년이었던 지난해 문예지 '문학의 문학'에 실린 대담에서 그는 "6·25가 없었어도 내가 글을 썼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며 "한국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선생님이 됐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걸 잊지 말고 기억해야겠다. 언젠가는 이걸 쓰리라"고 회고했다.한국전쟁은 그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상처였으며 그가 문학을 하게 된 이유였다. 1931년 경기도 개풍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를 일찍 여읜 뒤 어머니 손에 이끌려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갔다. 딸을 신여성으로 키우기 위한 어머니의 집념은 소설 '엄마의 말뚝'에도 잘 나타나 있다.
 
1950년 숙명여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지만 전쟁은 그의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대학에 입학한 지 한 학기가 지나지 않아 학업을 중단해야 했고, 숙부와 친오빠가 전쟁 중 사망하는 충격을 접해야 했다.
 
전쟁 직후인 1953년 호영진 씨와 결혼해, 1남 4녀를 둔 주부이자 어머니로 살았다. 소설가로서의 삶은 70년 '나목'으로 여성동아의 여류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되면서 시작됐다. 불혹의 나이에 늦게 등단했지만 이후 40년간 보여준 활약은 눈부셨다.
 
데뷔작 '나목'으로 주목받은 그는 '세모'(1971), '부처님 근처'(1973), '카메라와 워커'(1975), '엄마의 말뚝'(1980) 등을 연이어 발표하며 전쟁의 상처를 문학으로 승화했다.
 
박완서는 훗날 이렇게 술회했다. "한국전쟁이 난 해가 경인년이었으니 꽃다운 20세에 전쟁을 겪고 어렵게 살아남아 그해가 회갑을 맞는 것까지 봤으니 내 나이가 새삼 징그럽다. 더 지겨운 건 육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아물 줄 모르고 도지는 내 안의 상처다. 노구지만 그 안의 상처는 아직도 청춘이다." 이 시기 일들은 '나목'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은 거기 있었을까' 등에 투영돼 있다.
 
그는 지난해 7월 펴낸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서도 "돌이켜보면 내가 살아낸 세상은 연륜으로도, 머리로도, 사랑으로도, 상식으로도 이해 못 할 것 천지였다"고 되뇌였다.
 

·물신주의·여성억압 등 시대상 반영
 
그는 70∼80년대 급성장한 한국의 산업화 시대에 드러난 욕망의 이면을 날카롭게 파헤쳤다. 한국전쟁, 분단문제에 천착하면서 물신주의와 여성 억압에 대한 현실비판적 작품들을 발표했다. 특히 여성의 시각으로 여성의 억압 문제와 시대의 아픔을 그린 여성문학의 대모이기도 했다. '살아있는 날의 시작'(1980), '서 있는 여자'(1985),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1989) 등 장편소설에서 여성의 억압을 다뤘다.
 
1980년대 중반 이후 그는 여성문학의 대표적 작가로 우뚝 섰다. 1988년 남편과 아들을 연이어 잃는 큰 슬픔을 겪고 가톨릭에 귀의한 그는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1994),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1995), '너무도 쓸쓸한 당신'(1998) 등 자전적인 소설 등을 통해 삶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는 면모를 보여줬다.
 
정우련 소설가는 "선생님 개인이 겪었던 전쟁의 상처가 시대·역사의 문제와 맞물리면서 만들어진 작품들은 거리감이 없이 더 아프게 다가온다"고 했다.
 
그는 문학성과 예술성의 성취를 모두 이룬 작가였다. 소설집 '엄마의 말뚝' '꽃을 찾아서', 장편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그 여자네 집' '미망' '아주 오래된 농담' 등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그는 노년에 이른 뒤에도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2007)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2010)를 발표하는 등 식지 않는 창작열을 보여줬다.
 

·▣ 박완서 소설가 주요 연보

△1931년=10월 20일 경기 개풍 출생 

△1950년=숙명여고 졸업,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중퇴 

△1953년=호영진 씨와 결혼 

△1970년=여성동아 장편소설 현상공모에 '나목(裸木)' 당선, 소설가 등단

△1971년=첫 단편 '세모' 발표

△1976년=창작집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발표 

△1977년=장편 '휘청거리는 오후', 산문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발표 

△1978년=장편 '배반의 여름', 산문집 '여자와 남자가 있는 풍경' 발표 

△1980년='엄마의 말뚝'('엄마의 말뚝' 연작 1, 2편 '문학사상'에 연재된 데 이어 1991년 3편 발표), 장편 '살아있는 날의 시작' 발표, '그 가을의 사흘동안'으로 제7회 한국문학작가상 수상 

△1981년='엄마의 말뚝 2'로 제5회 이상문학상 수상

△1985년=장편 '서 있는 여자' 발표

△1988년=남편과 아들 연이어 사별 

△1989년=장편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발표 

△1990년=산문집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발표, '미망'으로 대한민국문학상 수상 

△1991년=장편 '저문 날의 삽화' 발표 

△1992년=장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발표 

△1993년='꿈꾸는 인큐베이터'로 제38회 현대문학상 수상,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 

△1994년='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으로 제25회 동인문학상 수상, 공연윤리위원회 회원 

△1995년=제1회 한무숙문학상 수상, 문학의 해 조직위원 

△1997년='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로 제5회 대산문학상 수상 

△1998년=보관문화훈장 받음, 장편 '너무도 쓸쓸한 당신' 출간 

△1999년=만해문학상 수상, 산문집 '님이여 그 숲을 떠나지 마오' 발표,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 출간 

△2000년=장편 '아주 오래된 농담' 출간 

△2001년='그리움을 위하여'로 제1회 황순원문학상 수상 

△2004년=장편 '그 남자네 집' 출간, 대한민국예술원 신입회원 피선 

△2006년=제16회 호암예술상 수상, 문화예술계 인물 중 처음으로 서울대학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 장편 '잃어버린 여행가방' 발표, 문학상 수상작 5편 엮은 '환각의 나비' 출간 

△2007년=장편 '친절한 복희씨', 산문집 '호미' 발표 

△2008년=단편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 발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개막작인 옴니버스 영화 '텐 텐'의 변영주 감독 다큐멘터리 '20세기를 기억하는 슬기롭고 지혜로운 방법' 출연 

△2009년=장편 '세 가지 소원', 동화집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 '나 어릴 적에', '문학동네' 가을호에 단편 '빨갱이 바이러스' 발표 

△2010년='현대문학' 창간 55주년 기념해 출간된 소설가 9인의 자전소설집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 참여,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출간. 가을 담낭암 진단, 10월 수술

△2011년=1월 22일 담낭암으로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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