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드라마

징글징글한 영화 ‘시’

사과나무 아래서 2010. 5. 19. 14:45

 

 

<중앙일보>

 

2시간19분의 러닝타임이 끝났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박수를 칠 수도 없었다. 그냥 먹먹했다. 정말이지 징글징글했고 총맞은 느낌이었다. 총알이 가슴을 파고들어 등 뒤에 ‘뻥’ 하니 큰 구멍을 낸 것 같았다. 얼마 전 한 영화시사회에서 본 이창동 감독, 윤정희 주연의 영화 ‘시’ 때문이었다.

# 강이 흐르는 작은 도시의 낡고 비좁은 연립주택에서 중학생 외손자와 단 둘이 사는 미자. 본명이 ‘손미자’인 윤정희가 맡은 역이다. 그녀는 생활보호대상자이고 일주일에 두세 번 거동이 불편한 돈 많은 할아버지를 씻기고 청소해주는 간병도우미로 생계를 꾸리지만 외출할 땐 늘 꽃 장식 모자를 쓰고 화사한 옷을 입고 사뿐거리며 걷는 멋쟁이 할머니다. 어느 날 우연히 그녀는 동네 문화원에서 ‘시’ 강좌를 듣게 되면서 난생 처음으로 시를 쓰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에 사로잡힌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시가 낭만의 화사한 꽃일 뿐, 그토록 처절한 것들의 열매인지 몰랐다.

# 그런 그녀에게 예기치 못한 일이 터진다. 엄마 없이 키우던 외손자가 여학생을 윤간하는 일에 연루된 것이다. 그 여학생은 다리에서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했고 유서에 여섯 명의 남학생 이름을 남겼다. 관련 학부형들은 서둘러 돈으로 입막음하려 했다. 예상가 3000만원, 한 명당 500만원씩 분담!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선 사람이 죽으면 돈으로 때우려는 못된 습관이 생겨났다. 거기 미자도 휘말렸다. 하지만 당장 500만원을 구할 길이 없었다.

#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통증 때문에 병원을 찾은 미자는 뜻밖에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는다. 처음엔 명사를, 나중엔 동사를, 그리고 최후엔 자기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을 망각해버리는 무서운 병. 하지만 서서히 진군해오는 망각의 점령군 앞에서도 미자는 시상(詩想)을 떠올리기 위해 무던히 애쓴다. 물론 좀체 잡히지 않지만! 바람에 날려 다리 아래 강물에 떨어진 하얀 모자, 펼쳐든 작은 수첩 위에 뚝뚝 떨어져 번지는 눈물 같은 빗방울만이 말의 꾸밈이 아닌 삶의 생살을 도려내야 비로소 빼꼼히 고개를 내미는 진짜 시상의 두렵고 무서운 존재방식을 예고할 뿐이었다.

# 가뜩이나 꼬인 일상 속에 간병하며 씻겨드리던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는 그날 따라 난데없이 까닭 모를 약을 먹여달라고 조른다. 약을 먹여드리고 몸을 씻는데 뭔가 이상하다. 자기 몸조차 못 가누는 할아버지가 눈의 흰자를 두런두런 돌려가며 단 한번만 자신이 남자임을 느끼게 해달라고 애걸한다. 그 할아버지가 먹은 약은 비아그라였던 것! 미자는 그의 몸을 닦던 목욕수건을 집어던지고 방을 뛰쳐나와 버린다.

# 하지만 자살한 여학생의 사진을 보고도 반성의 빛조차 없는 외손자를 보며, 그녀는 윤간당한 후 강물에 몸을 던졌던 그 여중생과 자신을 동일시라도 하듯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를 제 발로 찾아가 비아그라를 먹이고 스스로 그 짓을 당한다. 그 섹스신은 너무나 뜻밖이었고 서글펐지만 또 너무나 사람 같았다. 그 직접 대가는 결코 아니었지만 훗날 미자는 어쩔 수 없어 그 할아버지한테 외손자의 합의금 500만원을 받아낸다.

#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얘기하라는 ‘시’ 수업시간에 미자는 울먹이며 말했다. 너무나 힘들고 슬펐던 순간들이 실은 가장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미자는 ‘시’ 수업 마지막 시간에 죽은 여중생의 세례명을 딴 ‘아네스의 노래’라는 시 한 편을 남긴 채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아네스처럼 강물에 몸을 던졌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녀는 인생의 가장 처절했던 순간이 곧 시임을 깨달았으리라. 잔인했던 4월을 지나 5월의 첫날이다. 때론 천안함 사건보다도 더 두렵고 무서운 일상이 우리 앞에 도사리고 있다. 그 일상을 살아내는 진한 몸부림 자체가 곧 우리 삶의 처절한 시가 아니겠는가.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