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야기>
탁월한 상상력과 빼어난 언어연금술로 신비하고 독특한 마술적 리얼리즘의 작품세계를 구축해 마니아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는 21세기의 기인 소설가이다. 1946년 경상남도 함양(咸陽)에서 태어났으나, 직업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대구와 강원도 등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58년 강원도 인제군에 있는 기린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인제중학교를 거쳐 인제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65년 춘천교육대학에 입학한 후 1968년 군에 입대해 1971년 제대하고, 1972년 춘천교육대학을 중퇴했다.
1972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견습어린이들》이 당선되고, 1975년 《세대(世代)》의 문예현상공모에서 중편소설 《훈장》이 신인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중앙문단에 소설가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이후 단편소설 《꽃과 사냥꾼》(1976) 《고수(高手)》(1979) 《개미귀신》(1979)을 비롯해 원시생명에 대한 동경과 환상의식을 추구한 첫 장편소설 《꿈꾸는 식물》(1978) 등을 발표하면서 섬세한 감수성과 개성적인 문체로 독특한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소설가란 평과 함께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신문사와 학원 등으로 전전하던 모든 직장을 포기하고 창작에만 몰두하게 된다.
전업작가의 길을 택한 후 일상의 편안함을 거부하는 작가정신을 고수하면서, 단편소설 《박제》 《언젠가는 다시 만나리》 《붙잡혀 온 남자》와 중편소설 《장수하늘소》 장편소설 《들개》 《칼》 등을 잇달아 발표해 고정 독자층을 확보하는 베스트셀러작가가 되었다. 특히 초기 대표작으로 꼽히는 《꿈꾸는 식물》과 《장수하늘소》 등은 섬세한 감수성과 환상적 수법이 돋보이는 유미주의적 소설로, 신비체험과 초현실세계를 즐겨 다루는 이후의 작품세계를 가늠하게 하는 중요작품으로 평가된다.
화가지망생이기도 했던 작가는 그림에도 조예가 깊어 1990년 '4인의 에로틱 아트전'과 1994년 선화(仙畵) 개인전을 열었다. 뿐만 아니라 철학적 삽화가 돋보이는 우화집 《사부님 싸부님》(1983) 《외뿔》(2001) 등을 통해 진정한 깨달음이 무엇인가를 일깨우는 한편, 특유의 감각과 깊은 통찰력으로 《풀꽃 술잔 나비》(1987) 《그리움도 화석이 된다》(2000)라는 시집과 산문집 《감성사전》(1994)을 출간하는 등 다방면에서 활동함으로써 문학의 다양화에 기여하고 있다.
저서에 창작집 《겨울나기》(1980)를 비롯해 장편소설 《꿈꾸는 식물》 《들개》(1981) 《칼》(1982) 《벽오금학도》(1992) 《황금비늘》(1997) 《괴물》(2002) 등이 있으며, 산문집 《내 잠 속에 비 내리는데》(1985) 《말더듬이의 겨울수첩》(1986) 《감성사전》 《그대에게 던지는 사랑의 그물》(1998) 등이 있다. 이 밖에 우화집 《사부님 싸부님》 《외뿔》과 시집 《풀꽃 술잔 나비》 《그리움도 화석이 된다》 등이 있다.
악의(惡意)와 동심으로 빚어내는 맛깔스런 영혼의 비늘
이수의 초기 장편들인 <들개>, <꿈꾸는 식물> 등은 일상 속에 숨은 마성을 드러내는 소설들이다. 이외수는 시인을 꿈꾸거나, 폐사된 학원건물에 칩거하여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주인공들을 통해 가식적인 일상의 속물성을 폭로한다. 이외수 특유의 감성적이고 시적인 문체는 그런 속화된 세상을 초극하는 그만의 방법론이다. 이외수의 소설에선 성실하고 건강한 생활인이 잘 등장하지 않는다. 설사, 그런 외피를 띤 인물이더라도 그 내면은 부글거리는 야성적 감성과 민감한 영혼이 감춰져 있다. 그들은 작가 이외수가 근거리에서 판독한 스스로에 대한 모사에 다름 아니다. 1980년대 이후 한국의 대표적 베스트셀러 작가의 한사람으로 자리매김한 이외수는 어쩌면 소설보다는 시에 더 가까운 사람인지 모른다. 실제로 그는 <풀꽃, 술잔, 나비>란 시집을 발표한 적도 있다. 그의 소설에서 세계와 인간에 대한 인문학적 인식의 토대를 헤아리기란 쉽지 않다. 이외수는 예민한 감성과 날카로운 직관으로 다져진 영혼을 노래하듯, 소설을 쓴다. 그리하여 그의 소설에 첨예하고 질곡 심한 사회상들은 사장되거나, 모종의 악의로 가득찬 대립의 형태로만 드러난다. 그러니 이외수를 무조건 반사회적 인물들을 그려내는 작가라 부르기도 뭣하다. 이외수는 사회에 반항한다기보다, 아예 사회를 등지고 있는 작가다.
그런 걸 고답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해결되지 않는 여러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이외수는 끝까지 외곬로 나간다. 장편 <칼> 이후 이외수가 탐닉하고 있는 분야는 동양적 선과 구도의 세계다. 이전의 중단편들, 예컨대'장수하늘소'나 '자객열전','고수' 등에서도 설핏 그림자를 비치기도 했던 그런 초월적 세계는 중년이 넘은 작가 이외수가 새롭게 맞닥뜨린 현실 초극의 첩경이다. <벽오금학도>나 <황금비늘> 등에서 나타난 이외수의 시선은 한결 온화하면서도, 예민한 감성을 둥그렇게 휘감아 형성된 내면의 우물을 드러내고 있다. 그 잔잔하고 투명한 우물을 오래도록 들여다보고 있으면 알 수 없는 떨림이 조용히 감지된다. 그것은 중년의 나이임에도 순박한 동심을 잃지 않은 작가가 독자에게 던지는, 맛깔스런 영혼의 비늘이다.
또 하나의 꿈, 미술로의 여행- "내 앞에 무수한 시간이 있네"
그는 길다면 길고, 사연이 많다면 많을 인생 삼라만상의 가장 짧은 한 때를 거두절미하고 내보여준다. 삶의 여러 켜를 이루는 순간의 한 장면이 한 칼에 잘려 나온 느낌이 그의 묵화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그 순간들이 전후에 걸쳐있을 생로병사 사연을 염두에 둘 일은 없으리라. 만약 우리 인생을 짧디짧은 숏컷으로 나누어 보여준다면 그 순간의 앞뒤에서 우리를 못 견디게 했던 집착과 욕망과 즐거움과 안식이 그 순간과는 그다지 연관되어 있지 않음을 보게 되리라. 그는 이런 순간이 가지고 있는 절대성을 보여주고 있다. 아니면 긴 인생의 덧없음이 짧은 순간에서 재현되고 있음을 보여주려 했을까?
"무에 그리 견뎌내고 참아낼 일이 있었겠니." "이 순간이 너의 진면목인 것을." 그는 참으로 구슬프게 한 마리 메기를 그려 놓고 말하고 있다.
이외수의 작가정신이 한 점 일갈로 요약된다면 바로 그의 그림을 통해서일 것이다. 그는 많은 장편소설로 자신의 세계를 말해왔지만 기실 그가 그 많은 글에서 하고자 했던 말도 바로 이 한 마리 메기의 짧은 순간에 다 담기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그런 점에서 이외수의 묵화는 작가정신을 보여주는데 함축적이고 또 압축적이란 점에서 우리 문인화의 전통을 가장 충실하게 재현해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문인화란 것이 문인이 그린 그림이란 외형적인 의미 외에도 이른바 언어라는 구체적인 도구를 통해서 세상에 말하고자 하는 바를 화면에 담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외수의 묵화는 그가 소설을 통해서 그렇게 집요하게 찾아내고자 했던 한 순간의 경지- 그것이 깨달음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 몸을 단 한 번만 꿈틀거렸을 것 같은 한 마리의 메기, 그 전에도 그 후에도 다시는 피어나지 않을 것 같이 한 순간에 피어난 듯 오롯이 담아낸 붉은 꽃, 단지 하늘에 나타나기만 했다는 듯 날개로 남아있는 까마귀 등이 그렇다.
"그림은 손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그리는 것이다. 한숨의 호흡과 한번의 붓질이 가해질 때마다 마음과 손과 붓과 먹과 종이가 하나로 합쳐져서 하나의 형태를 낳는다. 붓이 가해지기 전에 어떤 형태를 의도하면 그 그림은 분명 실패한다. 의도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또는 우연히 나온 형태, 그것이 진정 마음이 원한 형태이다."
우리가 그의 묵화를 보면서 거의 사그러져가는 우리 문인화의 전통을 다시 떠올리는 것은 그의 묵화가 가지고 있는 고담 담백을 바탕으로 한 고도의 절제미 때문만이 아니라, 극도로 절차탁마된 기법으로 순간에 요약해내는 많은 이야기성 때문만이 아니라, 바로 그의 작가정신이 여기 그의 묵화에서 가장 치밀하게 요약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릇 먹의 운용은 시간과의 싸움이리라. 궁극으로 찰나를 지향하는 묵화의 조성은 숙명적으로 시간이라는-먹이 마르기 전에 그려야 하는-한계 또는 조건과의 싸움이다. 이외수가 그의 전시회에서 보여준 그림은 가히 극단적인 일필휘지 단필 일획의 기법으로 담아낸 것이다. 그는 한 폭을 만나기 위해 수일 밤을 꼬박 새우며 수백 장의 파지를 불사했다. 거기다 그가 이번 작업을 위해 鳳翼筆이라는 가히 기상천외한 붓을 사용한 데도 먹 운용의 극단을 보여준다. 봉익필은 장닭의 꼬리털로 만든 붓이어서 심성이 거세고 먹을 받아들이지 않아 숙명적으로 한 필에, 그것도 순간에 끝내야 하는 시간만을 자각에게 주는 붓이다. 그가 한 순간에 그려야 하는 조건을 가진 붓으로 담아낸 묵화가 그 많은 이야기를 앞뒤에 남겨두고 단지 한 순간의 '그때'를 보여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지도 모른다. 그가 보여주는 한 경지의 찰나는 바로 작가 자신이 갖고 있는 한 경지의 찰나이며 그 찰나야말로 영원과 다르지 않다. -배문성 시인
장외인간 1 (2005년)
이외수가 전해주는 마음의 열쇠 뼈 (2004년)
이외수 소망상자 바보바보 (2004년)
道나 먹어라 (2004년)
내가 너를 향해 흔들리는 순간 (2003년)
날다 타조 (2003년)
괴물 1 (2002년)
외뿔 (2001년)
감성사전 (2001년)
그리움도 화석이 된다 (2000년)
황금비늘 1 (1997년)
말더듬이의 겨울수첩 (1985년)
사부님 싸부님 1 (1983년)
칼 (1982년)
들개 (1981년)
꿈꾸는 식물 (1979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