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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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겨울의 어느 날. 대학원 학기도 끝나고 취직도 안돼 무료한 나날을 보내던 최영미는 할 일없이 일기장을 뒤적이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기장에 시를 써 온 사실을 발견했다. 망설임 끝에 일간지 문화부 기자로 있던 한 선배에게 열대여섯 편 되는 시들을 보여주었다. 시가 될는지 안 될는지 반신반의 하는 가운데, 선배는 그것들을 한 출판사에 보냈다. 1992년 봄, 그 출판사의 주간이 한번 보자고 하여 갔더니. '재능이 있다'면서, 날마다 시를 써보라고 권했다. '한 스무 편 정도 모이면 다시 가져오라'는 소리와 함께. 주간의 말대로 날마다 시를 써서 두번에 걸쳐 주간에게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주간은 '갈수록 좋아진다'면서도 '1년 정도만 습작을 더 하면 좋겠다'며 등단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오기가 발동된 최영미는 그 시들을 들고 창작과비평사를 찾아 갔다. 여기서부터 일이 풀리기 시작해 그 해 겨울 등단의 기쁨을 맛보게 되었고, 다시 이태 뒤 시집 한 권만으로 일간지 1면의 6단 통광고를 내는 파격을 보이며 문제작 <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출간되었다. 최영미의 시는 쉽고 솔직하게 읽히는 것이 장점이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시를 써내기 위해 시인이 얼마나 노력을 기울이는가는, 시를 통해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때로는 문장에 마침표를 찍을까 말까 하는 문제로 밤을 새워 고민하며, 퇴고에 퇴고를 거듭한다. 퇴고가 끝난 후에도 다시 친구들의 의견을 듣고 반영한다. 친구들의 의견을 들을 때는 직접 보여주거나 전화기에 대고 시를 읽어준 후 의견을 묻는다. 소리 내서 읽을 때와 눈으로 볼 때, 시의 운율에 대한 느낌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직설적인 최영미의 시어들은 충격적이기도 하다. 처음 시집을 내자마자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어머니는 성당의 신부, 수녀에게 자랑스레 책을 돌렸다고 한다. 그 날 밤, 집에 돌아와서야 시를 읽게 된 어머니는, 컴퓨터에 대한 복수심에서 쓴 '퍼스날 컴퓨터'를 읽다가 경악했다. '아아 컴-퓨-터와 씹할수만 있다면!' 어머니는 다음날 새벽같이 성당에 가서 시집을 뺏다시피 도로 가져왔다. 그리고는 딸에게 말했다. '동네 챙피하니까, 앞으론 집에 오더라도 밤에만 와!' 그러나 이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책 한 권 보내달라고 청하는 친척들을 몰라라 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퍼스날 컴퓨터'의 '문제 부분`을 검정 매직펜으로 그은 뒤 책을 보내고는 그것도 모자라 확인전화까지 했다. "'퍼스날 컴퓨터'는 읽지 마세요." 최영미는 1980년 서울대 인문대 입학. 학생운동에 적극적이었던 '고전연구회'에 가입하여 세미나에 참석하고, 2학년 때 학내시위에서 훤칠한 키가 눈에 띄어 경찰서로 연행되었다가 구류 열흘에 무기정학을 맞았다. 졸업 후 민중당 초기에 자원봉사자로 활동했고, 한 급진적 운동조직의 외곽에서 <자본론> 번역에 참여했다. 적극적인 운동권은 아니었으나, 상당히 충실한 '동조자'였다고. 80년대가 지나가고 90년대를 거치며 최영미는 많은 것을 회의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는 것들이 있다. 그의 글은 변한 것을 속속들이 드러냄과 동시에 아직도 그들 세대의 마음 속에 변치 않고 남아 있는 그 어떤 갈망을, 그로 인한 아픔과 우수를 어루만져 준다. |
<서른, 잔치는 끝났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운동보다도 운동가를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 땐 동지여! 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리란 걸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너에게로 가는 길을 나는 모른다>
그리하여 이 시대 나는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하나
창자를 뒤집어 보여줘야 하나, 나도 너처럼 썩었다고
적당히 시커멓고 적당히 순결하다고
버티어온 세월의 굽이만큼 마디마디 꼬여 있다고
그러나 심장 한귀퉁은 제법 시퍼렇게 뛰고 있다고
동맥에서 흐르는 피만큼은 세상 모르게 깨끗하다고
은근히 힘을 줘서 이야기해야 하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나도 충분히 부끄러워할 줄 안다고
그때마다 믿어달라고, 네 손을 내 가슴에 얹어줘야 하나
내게 일어난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두 팔과 두 다리는
악마처럼 튼튼하다고
그처럼 여러번 곱씹은 치욕과, 치욕 뒤의 입가심 같은 위로와
자위 끝의 허망한 한모음 니코틴의 깊은 맛을
어떻게 너에게 말해야 하나
양치질할 때마다 곰삭은 가래를 뱉어낸다고
상처가 치통처럼, 코딱지처럼 몸에 붙어 있다고
아예 벗어붙이고 보여줘야 하나
아아 그리하여 이 시대 나는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하나
아직도 새로 시작할 힘이 있는데
성한 두 팔로 가끔은 널 안을 수 있는데
너에게로 가는 길을 나는 모른다
<선운사에서>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