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시

"이젠 고국에서 시 쓰고 싶어라" -마종기

사과나무 아래서 2007. 4. 14. 09:47

"이젠 고국에서 시 쓰고 싶어라"
회갑맞이 시집 펴낸 '재미의사 시인' 마종기씨
"타국살이 외로움 시 쓰며 위로받아"

   


그는 시인이다. 문단경력 40여년, 1960년에 낸 처녀시집 '조용한 개선' 이후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그나라 하늘빛' '이슬의 눈' 등 10여권의 시집이 나와 있다. 또한 그는 현직 의사이며, 33년째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살고 있다. 이만하면 시에 조금만 관심있는 독자들은 그리 어렵지 않게 그의 이름을 떠올린다.

마종기(60). 그는 우리 문단에서 참으로 독특한 존재다. 시인으로서 외길을 가지 않고 의사라는 조금은 엉뚱한 생활인의 길을 병행하고 있으며, 거주하는 지역이 모국어를 외국어로 써야 하는 먼 나라여서만은 아니다. 그가 구사하는 시어가 고국을 떠나 고립돼 있음으로 인해 오히려 순정하게 가다듬어지고, 육순의 나이에도 그의 시가 젊은이의 순수함과 부끄러움을 담아 모국의 독자를 매료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문학과지성사에서는 시인의 화갑을 맞아 두권의 책이 나왔다. 그간의 시집들을 묶은 '마종기 시전집'과 그의 문학적, 인간적 면모를 두루 담은 '마종기 깊이 읽기'다. 이참에 고정팬을 확보한 몇 안되는 시인에 속하면서도 시집 이외에 모국의 독자들과 만날 기회는 적었던 그에게 자신의 문학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육성으로 들려달라고 청했다.

그의 詩 깊은곳에 감추인 '위안의 힘'

"왜 이토록 끈질기게 시를 붙들고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돌이켜보면 고교시절(서울고) 문예반에 있다가 갑자기 의대로 방향을 바꿨을 때, 또 미국으로 건너와 5년간의 의사 수련기에도 시를 중단하려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의대시절 해부나 병리학 수업을 받으며 죽음과 삶에 대해 느낀 혼돈, 정신적 방황을 겪으며 더 시에 매달리게 됐던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는 의사로서 직접 환자를 대하고 죽어가는 이들을 겪으면서 다시 시를 쓰게 되더군요. 아마 의사가 안됐으면 더 이상 시를 쓰지 않았을지도 모르지요."

의사라는 직업 외에도 그의 시에 영향을 준 요인은 여러가지다. 그 하나는 예술가인 부모로부터 왔다. '태어날 때부터 시의 세례를 받는 시인은 많지 않다. 마종기는 그런 희귀한 복을 받은 시인 중의 한명이다… 성장기의 그만을 보자면, 그가 시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시가 그를 선택한 것처럼 보일 정도다.' 문학평론가 정과리는 '마종기 깊이읽기'의 서두를 이렇게 열었다. 마종기의 부친은 아동문학가이며 일본의 월간지 '문예춘추' 초대 편집장을 지낸 마해송씨, 모친은 한국여성 최초의 서양무용가인 박외선씨(전 이화여대 무용과 교수)다. 마종기가 간직한 문예적 자질은 이런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인 듯하다. 50년대초 대구에서 피란생활을 하면서 단칸방에 다섯 식구가 같이 살 때도 장남을 고전음악감상실에 데려다주었던 부친을 마종기는 선연히 기억한다. 지금도 그는 무용과 음악과 미술에 대한 남다른 기호와 애정을 갖고 있고, 어느 도시를 돌아다니든 미술관 순례와 음악회 관람을 낙으로 삼고 있다.

또한 그는 '4·19세대'로서의 정체성도 갖고 있다. 문학평론가인 고 김현이 지적했듯 4·19세대는 "한글로 배우고 한글로 글을 쓰고 한글로 사유한" '최초의' 세대다. 마종기도 자신을 '한글 1세대'라고 자처하며 "모국어를 열렬히 사랑하며 자랐고, 모국어에 대한 사랑 때문에 글쓰는 사람이 됐는지도 모르겠다"고 고백한다. 한편 연세대 의과대학 2학년 때 4·19를 겪은 마종기는, '며칠동안 총상 환자의 아비규환에 그야말로 피바다'였던 세브란스병원과, 임상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시종 심부름만 하면서도 며칠 밤샘에 완전히 피칠한 듯 변했던 자신의 붉은 가운을 기억한다. 당시 부정선거에 항의하며 울분을 부르짖던 김수영은 그와의 개인적 인연이 아니더라도 가장 좋아하는 선배시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에게 시는 '위로'다. "내가 생각하지 않았던 생활, 의사가 되고 이민온 삶에 대해 시를 쓰며 스스로 위로를 받는다. 마음이 약해지고 두서 없어질 때 시가 그것을 바로잡아준다. 사람들이 내 시를 사랑해준다면, 그 이유는 이런 '위로'가 독자에게도 전달됐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그는 말한다. 문학평론가 김주연은 이런 그의 시에 대해 "불안하던 마음도, 흥분에 떨던 마음도, 분노에 가득찬 마음도 마종기의 시 앞에서는 알 수 없는 평정을 회복한다"고 묘사한다.

1959년, 마종기는 박두진선생으로부터 '현대문학' 1월호에 '해부학 교실'이라는 작품으로 첫 회 추천을 받았다. 이렇게 시작된 시인의 문학연보는 이듬해 3회 추천을 완료한 뒤 처녀시집 '조용한 개선'의 출간으로 이어졌고, 97년 편운문학상과 이산문학상을 수상한 시집 '이슬의 눈'까지 차분한 발걸음을 옮겨왔다.

물론 오랜 세월 그의 시에도 변화는 있었다. 학생시절과 미국에서 인턴, 레지던트를 거칠 때 쓴 초기 시에 생명에 대한 집착이 강하게 드러나 있다면, 이후의 작품에는 차츰 이민자의식이랄까, 타국생활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자주 나타났다. 그러다 10년전부터는 종교생활(그는 스물두살에 가톨릭에 입교해 라우렌시오라는 세례명을 받았다)이 깊어지면서 죽음과 삶이 따로 있지 않다는 깨달음, 영원성이 개입되게 됐다고 한다.

다만 변하지 않는 생각이 있다면, "시를 쉽게 써야겠다"는 것. "시가 언어의 유희로 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다짐을 굉장히 많이 한다"고 그는 말했다.

마종기의 창작환경은 당연히 퍽 외롭다. 그는 낮시간 대부분을 미국인 환자나 의사들과 보내고, 주변의 한국 교민들 중에는 시를 쓰는 이는커녕 읽는 이도 없다. "아내도 처음엔 '취미생활'로 이해했지만, 외국에서 살며 남편이 여가시간마다 들어앉아 시를 쓴다는 게 그리 재미있는 일은 아닐 것"이라며 그는 웃는다.

"사람이 혼자서 자기 내면을 쳐다보는 시간이 없다면 시란 게 써지지 않겠지요. 이런 환경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생각도 합니다. 단지 시쓴 뒤 누군가 읽어줄 문우(文友)가 곁에 있다면 하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2년후엔 은퇴하고 '文友'들과 어울리는게 꿈"

그는 80년 시집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를 출간하면서 세번째로 일시귀국했고, 이후 2년에 한번 꼴로 고국에 와 동료문인들을 만나기도 하고, 연세대와 서울대 의대병원 등에서 소아방사선 진단학에 대해 강연하기도 했다. 그가 30여년간 문학이란 공통분모로 교우해 오고 있는 소중한 우인들은 황동규(시인·서울대 영문과 교수), 김영태(시인·무용평론가), 정현종(시인·연세대 영문과 교수), 김병익(문학평론가), 김주연(문학평론가) 등이다. 특히 중3때부터 친구였고, 대학시절 '뻔질나게' 서로의 집을 오가며 우정을 나눴던 황동규시인은 "아주 밝고 쾌활하며 노래도 곧잘 하는, 나무랄데 하나 없는 친구"로 정겹게 마종기를 묘사한다.

이번 전집과 '깊이 읽기' 출간을 두고 시인은 무척 쑥스러워 한다. "출판사의 배려가 고맙긴 하지만, 책 나오는 순간에도 외국에 산다는 게 부끄럽고, 예전 작품을 읽다보니 내가 그동안 온 힘과 마음을 다해 시인으로 살았을까 자성도 한다"고 말한다. 그는 아직도 공부한다는 자세로 시를 쓰고, 자신의 시에 대해 "잘 쓰진 못하지만 최근 쓴 게 좀 나아지지 않았나"라는 인색한 평가를 내린다.

마종기는 현재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자동차로 한시간 거리에 있는 오하이오주 톨레도시에 살고 있다. 인구 50만명에 한국인은 100여가구가 산다. 슬하에 3남은 장성해 제 갈길을 걷고 있다. 오하이오 의대 교수로 5년여 근무하다 지난 75년 교직을 사임하고 개업한 그는 이후로도 임상교수로 재직하며 당시 서부 오하이오의 유일한 소아방사선과 의사로 톨레도 병원의 금요 세미나를 시작해 지금까지 20년째 계속해 오고 있다. 57세이던 95년, 그해에 새로 생긴 미국 소아방사선과 전문의 시험에 합격했고, 서부 오하이오 아동병원 건립에 힘써 이듬해 초대 부원장 겸 방사선과 과장에 취임했다. 지난해 그는 병원으로부터 공로 표창을 받았다. 2년 뒤 은퇴를 계획하고 있는 그는, 고국에 돌아와 살면서 "부끄러움을 지우며 시도 쓰고, 친구들과 소주잔도 나누고 싶다"는 소박한 꿈에 부풀어 있다.

 

-동아일보 김영신 기자

 

 

낚시질

낚시질 하다
찌를 보기도 졸리운 낮
문득 저 물 속에서 물고기는
왜 매일 사는 걸까

물고기는 왜 사는가
지렁이는 왜 사는가
물고기는 平生을 헤엄만 치면서
왜 사는가

낚시질 하다
문득 온 몸이 끓어오르는 대낮,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만은 없다고
중년의 흙바닥에 엎드려
물고기 같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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