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시

김용택

사과나무 아래서 2007. 6. 14. 09:33

 

 


김용택(金龍澤, 1951. 9.28 - )


한국의 시인, 초등학교교사

1. 김용택의 생애와 문단 이력

김용택은 전북 임실군 덕치면 진메마을에서 태어나서 순창 농림고교를 졸업했다. 21인 신작 시집 『꺼지지 않는 횃불로』(창작과 비평사,1982)에 시 「섬진강」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여러권의 시집과 산문을 집필 하는 등 누구보다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중견 시인이다. 그에게 주어진두 차례의 문학상, 김수영 문학상(1986)과 소월시문학상(1997)은 이 같은 활동에 대한 중간 평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문단 이력에 비한다면 김용택의 생애에 대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그다지 많지 않다. 위 진메 마을에서 나서 자라고 현재까지 살고 있다는 게 주된 내용인데, 이 사실은 기껏해야 그가 근대화,도시화의 물결에서 한반 비켜 선 위치에 있는 생자 촌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해 줄 뿐이다. 순창농림학교로 끝나는 그의 학력도 별로 자랑할게 없고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조그만 초등학교 교사(재학생 15명,운암초등학교 마암분교)의 이력 또한 내세울 만한 게 못된다.

이러니 시인이라는 사실을 제외하고 나면 김용택은 그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보통 사람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삶을 그저 평범하다고 할 수만은 없다. 널리 문명이 알려져서 이제는 제법 그럴싸한 자리로 옮겨 앉으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고 편안한 삶의 유혹에 흔들릴 법도 하지만 여전히 자기 삶의 터전을 지키면서 아이들과 함께 하겠다는 초심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점도 그렇지만 시작 활동을 통해 자신의 생리적 고향이자 문학적 고향인 섬진강을 근대적 도시적 삶에 지친 사람들의 공통의 고향으로 되살려 내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의 삶은 결코 범상하지 않다.

바로 이처럼 평범한 듯이 보이면서도 결코 평범하지 않은 점이 김용택의 매력 아닌 매력인 셈이다. 김용택이 어느 사이엔가 매스컴의 조명을 받는 위치에 올라서게 된 것도 역설적이긴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남보다 뛰어날 것 없는 평범함,혹은 화려하고 세련된 근대적 삶과는 한참 동떨어진 그의 삶 자체가 그를 스타의 반열에 올려 놓게 된 연유이다.

이 처럼 매스컴에 의해 확산되고 있는 김용택에 대한 관심은 아예 김용택 현상 이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이다. 그것은 때때로 그의 시 시계에 대한 엄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넘어서서 그의 시와 삶을 터무니없이 신비화 시키기도 한다.
그것이 그에게 명예가 될지 치욕이 될지 잘 알 수 없지만 일단 그에 대해 매겨진 '섬진강의 시인'이라는 일반적인 평가,상당한 문명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끗끗하게 고향과 고향의 자연을 지키며 살아갈 뿐 아니라 앞으로도 그러하리라는 기대를 갖게 하는 시인이라는 사실만 지적하고 넘어가기로 한다.


2. 섬진강과 인연

김용택의 시작활동과 삶은 섬진강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그의 시와 산문은 섬진강을 젖줄로 하여 이루어진 그 자신의 삶을 토대로 하여 씌어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시와 산문은 섬진강이 산과 들과 마주치면서 지어내는 모양이자 바위에 부딪치고 자갈과 모래를 쓰다듬으며 내는 소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의 시와 산문은 섬진강변에서 살아가는 농민들의 삶의 이야기이자 섬진강이 지어내는 갖가지 모양과 갖가지 소리들을 이제는 자연과 교감할 수 이는 능력을 상실해 버린 근대 도시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번역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용택 시의 모체인 섬진강이란 어떤 강인가? 섬진강은 김용택 자신의 설명(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에 따르면 전북 진안군 마령면 원신암 마을에서 발원하여 숱한 물줄기들을 끌어 모으며 212.3 Km를 흘러내리다가 광양만에서 이르러 바다로 빠지는 강이다. 이 강은 3개의 도와 12개의 군을 거쳐 지나가는데 그 유역 면적만 해도 무려 4896.5km2 달하고 이를 젖줄로 살아가는 사람의 숫자만도 수백만에 달한다.

섬진강은 단순히 평화롭고 아늑한 농경적 삶의 기억만이 아니라 근현사의 격변 그리고 급격한 근대화가 남겨 놓은 갖가지 상처들을 안고 있는 역사의 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김용택이 섬진강가에서 나고 자랐을 뿐 아니라 자신의 삶 속에 각인된 섬진강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는 것은 대단히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근대화와 산업화의 과정에서 잃어버리고 짓밟힌 농경적 삶의 기억을 되살려 내는 일이며 유난히 아프고 쓰린 기억으로 채워진 우리의 근현대사의 상처들을 어루만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김용택은 섬진강의 일부인 크고 작은 바위들이 캐내어져 도회지이 한구석을 장식하는 조경용으로 팔려나간 뒤에도 여전히 섬진강가에 든든히 뿌리박고 있는 바위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 바위는 섬진강이 주야로 흐르면서 자신의 위에 아로새긴 크고 작은 물살의 무늬들을 햇살에 비추어 냄으로써 섬진강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그 속에 담겨진 역사의 흔적과 기억들을 토해 낸다. 그렇게 함으로써 스스로 아름다워지고 섬진강과 시인은 이렇게 서로를 구별할 수 없이 뒤얽혀 있는 것이다.

가령 "우리 말의 소갈을 본때 있게 구사하여 우리나라의 밋밋한 산천을 감도는 강물과 같은 리듬에 실어낼 줄 아는 우리 시대 최고의 서정시"(최원식,노동자와 농민),'실천문학"(1985) 라는 평가가 강조한 것은 섬진강의 흐름과 그의 시의 리듬의 상관성이다. 시인이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순리의 철학을 인정과 세태에 연결시켜 서정적으로 노래하여 왔다"는 평가(소월시문학상 수상작 선정), 문학사상(1997.12)에서도 김용택 시의 서정성과 섬진강이 맺는 관련성은 여지없이 강조되고 있다. 김용택에게 '섬진강의 시인' 이라는 호칭이 주어진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3. 공동체의 기억과 그 변주

김용택의 삶과 시를 규정하고 있는 '섬진강'은 김용택의 시에서 어떻게 형상화되고 있는지 이 점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김용택의 출세작인 「섬진강」연작을 살펴보면 남도의 산과 들을 흘러내리면서 섬진강이 지어내는 다양한 아름다움과 섬진강을 젖줄로 살아가는 수많은 민초들이 빚어내는 다채로운 삶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 연작시들 가운데서 가장 뛰어난 작품은 아마 '맑은 날'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섬진강 24』일 것이다. 거의 한 세기에 걸친 긴 삶을 마감한 할머니의 장례식 모습을 통해 죽음조차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로 받아 들이는 농민들의 모습을 생동감 넘치게 그리고 있다. 특히 섬진강의 흐름을 연상케 하는 유장한 리듬,자연과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통찰로 가득 찬 서정적 진술과 개성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농민들의 언어가 교직되고 있는 이 시는 섬진강과 민중의 끈질긴 삶이 둘이면서 하나라는 사실을 감동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섬진강」의 연작의 전체적인 윤곽과 형상화의 방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서시격인「섬진강1」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작품은 김용택이 필생의 소재이자 주제로 선택한 섬진강을 어떻게 대하고 인식하고 있는가를 분명하게 보여 줄
뿐 아니라 그 이후의 시작 방향까지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는 섬진강 유역에 있는 모든 것에 생명과 자양을 공급하는 '실핏줄'이며 그 흐름이 어떤 방해에도 불구하고 끊이지 않을 것임을 말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 강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들의 아름다움과 그것들의 천연스러운 어우러짐을 노래하는 것이 자신의 시적 사명임을 암시 하고 있는 것이다.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 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 준다

-「섬진강 1」중에서

'가문 섬진강'의 이미지는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그 존재를 위협당하는 섬진강의 모습을 환기할 뿐 아니라 근현대사의 질곡 속에서 애잔하게 목숨을 이어 온 민초들의 삶을 환기시킨다. 시인이 강조하는 것은 단순히 섬진강을 무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처한 위태로운 상황을 강조하지 않고, 섬진강과 섬진강에 목을 매고 살아가는 목숨 가진 모든 것들의 아름다움과 삶이 결코 끊어질 수도 없고, 끊어지지않으리라는 확산이다.

"어디 몇몇 애비없는 후레자식들이/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이라는 확신에 찬 구절은 뿌리없는 근대화와 개발 독재의 폭력에 맞서 섬진강과 그 주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위엄을 지키겠다는 윤리적,실천적 결단으로 읽힌다. 섬진강과 그것에 얽혀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시적 형상화의 출발점은 바로 이ㅣ 윤리적 실천적 결단이다.

시인이 관심을 기울이는 일차적인 대상은 과거 그 자체가 아니라 나날이 파괴 되어 가는 섬진강의 자연이고 나날이 궁핍해지고 삭막해지는 사람살이이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스스럼없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과거 공동체적 삶의 기억이다. 아직 오지않은 그래서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기 위한 참조항이 되기도 한다.

누구는 글귀가 밝아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귀동냥 손동냥 하여
글 잘하는 사람이 생겨나
세상 이치에 맞게 적발하고

축문과 제문도 쓰고 침도 잘 노니
그 사람 집이 글방이 되더라.
누구는 또 뭐 잘하고 뭣 잘하고
누구는 소리 잘 하고
누구는 쇠 잘 다루고
누구누구는 징 장구 소구 잘 치니

모두 농악에 한가락씩 장기가 있어
이래 저래 안과 밖으로
일과 놀이에 구색이 맞아
자연스럽게 다 소용되는 사람들이니
다 사람 구실을 하고

서로서로 사람사람을 다 귀하게 여기니
동네방네 일에 아귀가 맞아
다 사람 대접을 받았더라.

-「섬진강 13」중에서

이 시의 부제가 인공적으로 조성된 근대 도시와 대비되는 '자연부락' 이라고 되어 있다는 사실은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자연부락은 오랜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 그래서 구체적이며 살아 있는 노동의 주체,각기 고유한 이름과 개성을 지닌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이다. 시인이 꿈꾸는 공동체는 무수한 차이를 담지한 그리고 바로 그 차이 때문에 서로 연결되고 의지하며 서로의 삶을 북돋워 주는 생명의 공동체인 것이다.

실제로 시인의 시에서 그려진 무수한 농민 일반으로 환원 될 수 없고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고유한 존재들, 각기 나름의 독특한 개성과 체취와 생활습관을 지닌 살아 숨쉬는 실명을 가진 존재들이다. 섬진강의 일부를 이루는 수많은 풀과 꽃과 물고기들 역시 유로 환원될 수 없는 삶의 어느 순간 그와 조우함으로써 그에게 '길들여진', 특별한 아우리를 지닌 존재들이다.

시인의 시가 그려낸 공동체는 상반된 가능성을 지닌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하나는 말할 것도 없이 공동체적 삶의 존립을 위협하는 부정적인 현실을 비판적으로 드러냄으로써 민족의 상상을 해체하는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이 공동체의 기억을 토대로 더 큰 공동체- 딱히 민족이라고 할 수만은 없는 -에 대한 희망을 엮어가는 측면이다. 섬진강의 연작은 끊임없이 민족의 상상을 해체하는 힘과 민족을 포함한 더 큰 공동체에 대한 상상과 희망을 자극하는 힘이 때로는 삼투하고 때로는 갈등하는 역동적인 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점과 관련하여 주목되어야 할 것은 시에서 이중적인 언어의 갈등,다시 말해서 표준어 지향성과 생활방언 지향성이 함께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한국어는 단일한 언어가 아니라 지역,계층,성 등에 따라 서로 다른,이질적이고 다양한 언어들로 구성된 역동적 갈등의 장이다. 김용택의 언어가 문어체의 표준어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그는 농민들의 생활 언어인 방언을 다양하게 구사함으로써 표준어기 지닌 동질화하는 힘을 거부하며 표준어에 의해 포착되지 않은 이질적인 삶의 부분-가령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이나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들 같은 것들을 끊임없니 환기시킨다.

이질적인 부분이란 근대화에서 소외된 농민들로,관 주도의 농정이나 파행적이고 폭력적인 근대화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를 공공연히 나타내는 풍자적인 시들이나 서사성이 강조된 시들에서 사용된 호남 방언 그 중에서도 그의 고향이니 진메 마을의 토박이 농민 언어들이 그런 예에 해당된다.

<섬진강 14-호박들.,<마당은 비뚤어졌어도 장구는 바로 치자>,<시는 서울서 쓰고 사는 건 우리가 살고>,<풀피리> 등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농민들의 생활속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관용적 수사나 속담들을 원용하거나 민요의 율격을 다양하게 변용한 작품들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초기의 시는 표준어/방언을 명확하게 구분해서 쓰고 좀더 문어체의 표준어에 기울어져 있는 듯이 보인다. 서정성이 두드러진 시에서는 문어체 표준어를, 그리고 풍자적이거나 서사성이 강한 시에서는 구어체 생활 방언을 각각 구사했던 것이다. 이런 구분은 점차 모호해지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김용택시는 흔히 지적되는 것처럼 1970년대 신경림의 시에 맞닿아 있가기 보다는, 1930년대 백석 시에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4. 맺는 말

이상에서 살펴본 것 처럼 김용택 시는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쉽고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시가 아니라 간단치 않은 모순과 긴장을 안고 있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섬진강」연작을 포함한 김용택의 시는 가장 '민족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온 세계와 연결되어 있어서 불가피하게 민족의 상상을 자극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민족적인 것'이 부정되고 말소되어 가는 상황을 통해서 근대화를 추동한 민족의 상상을 해체하는 효과를 발휘하기도 하는 것이다.

김용택의 시를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 역동적인 긴장과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때때로 이 역동적 긴장과 갈등이 이완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이점은 김용택의 시가 과거에 대한 기억에서 출발한다는 사실과 관련된다. 비판적 지성의 매개를 거치지 않을 경우 과거는 현재와의 시간적 심리적 거리 때문에 자칫하면 주관적 감정으로 채식되고 과도하게 이상화되거나 심미화되기 쉽기 때문이다.

최근의 시에서 자주 발견되는데 여기서 과거는 끝없이 동요하면서 소멸을 향해 줄달음치는 불안한 현재에 대한 심리적 정신적 위안을 제공해 주는 것으로 그려진다. 근대는 거부할 수 없는 현실로 용인되며 과거는 현재가 강요하는 상처와 불안을 위로해 주는 심리적 의지처가 된다. 이러한 경향은『그 여자네 집』에 실린 몇몇 작품들에서 은밀하게 나타나는데 여기서 볼 수 있는 자기 충족적인 과거에 대한 걷잡을 수 없는 그리움은 바로 이 같은 위안의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은 정당하게 기억된 과거가 아니라 자기 기만적인 것이라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후자의 경향은 특히 1980년대 말에 상자된 그의『꽃산 가는 길』이나 「그리운 꽃편지」같은 시집에서 주로 나타난다. 여기서 소박한 촌락 공동체에 대한 기억은 '꽃산'이나 '꽃편지'처럼 억압과 착취로부터 해방된 더 큰 공동체를 상징하는 혹은 그것의 도래가 임박했음을 알리는 메시지의 관념적 등가물로 변형되었다.

"마른 풀잎보다 더 가볍게 흔들리시며 징검다리에서 봄바람 타시는 어머미(섬진강9)의 생생하고 구체적인 이미지가 "기나긴 어둠의 역사를 밝혀온 /햅쌀같이 눈이 부신 /.....어머니 처럼 생경한 관념의 덩어리로 변질된 것이 그 좋은 예이다. 이는 김용택이 그린 전근대적 공동체가 지닌 고유한 미덕과 가치들을 무매개적으로 미래에 전이시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경향들은 최근 김용택의 시가 수용되는 방식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보인다. 그 가운데서도 두드러진 독법 중의 하나는 그의 시에서 근대적,도시적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세계-잃어버린 고향을 발견해 내도록 하는 것이다. 주로 매스컴을 통해 확산된 이런 식의 독법에 따르면 김용택의 작품은 근대에 대한 비판의 거점으로 이해되는 대신 근대적 삶에 지친 대중들에게 값싼 위안과 안식을 제공하는 대중적인 소비의 대상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이 경우「섬진강」연작이 지닌 건강한 비판성은 몰각되고 단지 동질적인 기억을 공유한 집단에 대한 상상적 동일화를 부추기는 주술로의 전락을 피하기 어렵다. 이제 김용택에게 요구되는 것은 과거를 과도하게 이상화하거나 심미화하는 경향을 극복하는 것, 그리고 상투화된 서정성에 함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경계하면서「섬진강」연작을 통해 제시한 기왕의 시적 비전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촌락 단위의 삶이 더 이상 존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친화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게된 상황에서 또한 국민 국가의 이념적 정당성 자체가 의문시 되고 국가와 국가 경계 또한 급속히 허물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이 제시한 소박한 공동체적 삶의 비전은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가- 그것이 과연 차별과 억압을 극복하고 모든 차이의 조화로운 공존을 가능케 하는 대안적 세계의 참모습에 가까운 것인가 하는 점은 끊임없는 의문이라 하겠다.

그러나 초기시는 주로 고향과 고향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태에 비추어 서정적으로 노래했다. 이는 이성부나 고은의 시에 영향을 받은 듯하다. 문학상의 흐름에 얽매이지 않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시로 독자들을 감동시켰다. 시의 대상인 자연을 삶의 한복판에 끌여들여 절제된 언어로 형상화한 그는 김소월과 백석을 잇는 시인으로 평가된다.


5. 주요 작품

-시집 :『섬진강』(1985)/ 『맑은 날』(1986)/ 『누이야 날이 저문다』(1988)/ 『꽃산 가는 길』(1988)/ 『그리운 꽃편지』(1989)/ 『그대 거침없는 사랑』(1944)/『강 같은 세월』(1995)/『그 여자네 집』(1998)/『나무』(2002) .

-동시집 : 『콩, 너는 죽었다』(1999).

-동화 옥이야 진메야 (1996)

-산문집 : 『작은 마을』(1991)/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1994)/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 』(1997)/ 『섬진강 이야기 1,2』(1999)/ 『인생』(2000). 꽃을 주세요 (2003)- 백년글사랑

6. 경력

~ 시노래모임 나팔꽃 회장

2002 ~ 전북환경운동 공동의장

2002.3 ~ 덕치초등학교 교사

2003 ~ 제4대 전북작가회 회장


7. 수상내역

1986 제6회 김수영문학상

1997 제12회 소월시문학상

2002 제11회 소충사선문화상


8. 도서작품

촌놈, 김용택 극장에 가다 (이룸,2000)

행복수첩(좋은생각,1998)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한양출판,1997)

그리운 꽃편지 (문학동네,1999)
 

-출처 : [기타] 도서: 새로쓰는 한국시인론(백년글사랑,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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